:: 하종강의 노동과 꿈 ::
  노동시대
  삶과 꿈
  멀티미디어

:: 하종강의 노동과꿈 >> 책 소개 
146   4/8

 내용보기

작성자


철수와영희
(2007/11/27)

제목


[re] 전사의 피에서 꽃향기를 맡다 (춤추는 펜)

<철들지 않는다는 것- 하종강의 중년일기>

전사의 피에서 꽃향기를 맡다  

구원을 향한 끝없는 날개짓 오래 전 좋은 수필집 한 권을 읽은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안보고 집안에 뒹구는 책과 함께 그 수필집을 헌책방에 넘겼다. 그 뒤 가끔씩 그 수필집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책이 왜 자꾸 눈에 밟혔는지 모르겠다. 아마 실생활에서 길어올린 잔잔한 에피소드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나 보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관념적인 사람인가. 나는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모든 종교를 허용하는 내 속의 강한 추상성에 대해 매번 놀라곤 한다. 지금보다 젊은 날, 나는 고흐나 실레의 그림에서 전해오는 다스려지지 않은 거친 호흡들이 유치한 치기로 가득차 있다며 은근히 경멸하곤 하였다. 그러면서 쇠라와 몬드리안의 아스라이 끝을 알 수 없는 영속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담은 그림을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그 사랑은 여전하다. 모든 형식적인 잎을 떨어뜨리고 근원적인 것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는 수십 그루의 나목(裸木)을 사랑했던 박수근처럼 말이다. 나는 말해질 수 없어 침묵하고 있는 것들이 함축하고 있는 그 핵심에 가닿고자 하였고 언뜻 그 일부에 대어지는 날에는 스스로 감격해 하곤 하였다. 단아하고 정제된 채 죽은 듯 가라앉아 있지만 끝내 뿌리칠 수 없는 영원에의 갈증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덧 나는 생활의 실경에서 질박하게 끌어올린 것들에 대해 서서히 마음을 여는 나이가 되었다. 참다운 것은 터치되지 않는 저 너머 순수한 결정(結晶)에 있다고 믿었던 시선이 땅으로 박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때 나는 나의 땅에 대한 절박함이 오래 꿈꾸던 이상 세계의 한 축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또한 그 멀고 잡히지 않는 세계에 대한 몸부림이 실제적인 일상과 접목되지 못할 때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때에 따라서는 한순간에 깨어지고 마는 관념의 허약함을 왜 그리도 오래 맹목적으로 붙잡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지개를 잡기 위해 하루종일 분수 근처를 헤맬 것이 아니라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왜 그리도 늦게 깨달았는지 모를 일이다. 나의 관념성은 육신을 입은 자의 필연적인 괴로움을 떨쳐내기 위한 길찾기였지만 그것은 반쪽의 것이었다. 달의 이편에서 달의 저편을 보려고 무모하게 덤비는 자에게 구원은 먼 것이었다. 단언컨대 피와 살이 펄펄 끓는 육신을 입은 인간에게 구원은 없다. 그러나 절대적 구원의 세계는 실체로서 존재하며 다만 인간에게는 그 길로 가까이 가고자 하는 끊임없는 날개짓만 허용될 뿐이다. 그 가열한 몸부림은 인간에게 고통이자 속박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럼 나의 현실에서의 길찾기는 완전해졌는가. 나는 여전히 관념과 현실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노력하는 동안에는 방황하는 법이라는 괴테의 말처럼 나는 오늘도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의 글은 이 수필집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후에 문득문득 내 내부로부터 무언가를 쓰도록 충동하여 나를 자꾸만 컴퓨터 앞으로 당겼던 긴 단상들이다. 써놓고 보니 나를 울리고 아마 읽는 사람도 울릴 것이다. 괜히 사적인 심정을 풀어낼 때의 어설픈 자기류적인 감상의 덫에 걸리는 걸 피하고 싶었지만 나의 멀고 아득한 추상성에 대한 경사로부터 실제적인 생활로의 전이가 이 수필집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끝내 거둘 수 없는 사람을 향한 시선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운가. 내게 꽃과 사람 중에 어느 것을 양자택일하라고 한다면 나는 꽃을 선택할 것이다. 꽃이라는 자연이 없다면 사람이라는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알수록 실망하게 되지만 꽃은 알수록 신비로워진다. 사람은 결코 꽃보다 아름답지 않다. 사기, 협잡, 폭력을 꽃은 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꽃의 상위에 사람을 세우고 싶어서가 아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의 끈을 차마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고통이 있고 보다 많은 사람이 모인 사회라는 틀 안에는 항시 모순이 작동하고 있다. 그 인간적 고통과 모순에 눈을 뜨고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은 늘 있어왔고 필연적으로 피를 흘렸다. 하종강은 아마 그런 분들 중의 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기독교가 가진 이상성과 노동운동가라는 현실성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온 분 같다. 이 수필집 속에서 종교와 현실의 충돌과 극복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 십대 때 참다운 진리를 찾아 산속에서 묵상을 하다가 진짜 진리는 세상 속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 그 단초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가 70년대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인민의 눈물 젖은 빵과 오페라 사이에서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굶주려 본 사람만이 발길을 진리로 향한다는 말에 깊이 감동하여 별 망설임도 없이 인민의 편에 서게 된 것이 그렇다. 하지만 그 길에는 피를 묻히기 마련이다.

그는 안락한 세계에의 유혹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현실의 압력에 맞서며 흔들림없이 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다 더 인간의 내밀한 고민으로 시선을 돌리는 새로운 `혁명`이 왜 하나같이, 좀 더 살기 편해지는 쪽으로, 좀 더 유명해지는 쪽으로, 좀 더 돈을 많이 버는 쪽으로, 부당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탄압받지 않는 쪽으로만 향해지는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이런 심중의 말을 토로하는 그는 분명 고독한 사람일 것이다. 조금 더 세게 밀고 가면 순교에 가까이 갈 사람들이 하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바르게 살기` 위해 작은 이익부터 포기하는 경험이 쌓여야 나중에 `큰 일`을 위한 `큰 희생`도 가능해진다고 역설한다. 그는 정확히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나오는 중년이 된 4.19 세대의 음울한 독백의 반대편에 서 있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원씩 걷고/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한때 현실을 향해 울부짖기는 쉽다. 계속 현실을 향해 울부짖기는 쉽지 않다. 계속 울부짖는 사람은 돌을 맞기 쉽다. 그 돌을 던지는 사람은 울부짖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눈을 감은 사람이다. 또한 산중이나 교회 안에서 겉멋으로 세속화되지 않기는 쉽다. 하지만 세속 안에서 참으로 세속화되지 않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하종강은 좀더 나은 삶은 세속 안에서의 따뜻한 투쟁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는 전사이다. 그러나 이 수필집 속에서는 전혀 피냄새가 나지 않는다. 차라리 꽃보다 진한 사람의 향기가 맡아진다. 꽃이 꽃향기를 내기는 쉬워도 사람이 사람향기를 내기는 어렵다. 피냄새가 진실하고 지극해지면 방향(芳香)이 되는가. 하종강, 그는 꽃을 든 남자이다.  예스 24서평에서 (2007-11-26)


:   :
           스팸게시물 등록 방지를 위한 과정입니다.
왼쪽의 숫자를 오른쪽의 칸에 적어 주세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86
    [re] ‘스타 강사’ 여섯 명이 쓴 세상 이야기<레디앙>

철수와영희
2007/09/21 2552
85
    [re] 80의 진보를 이야기하자 (책서문)

철수와영희
2007/09/20 2466
84
  ------------------------------------------------

하종강
2006/06/08 3023
83
  <길에서 만난 사람들> 서평 모음

하종강
2007/07/15 3075
82
    [re] 빛과 소금 같은 사람들 인터뷰 모음 (글샘)

유명선
2008/03/04 2481
81
    [re] 한가위에 선물할 책 하나(된장)

후마니타스
2007/10/13 2762
80
    [re] 우리사회의 바탕을 지탱해주는 사람들!

후마니타스
2007/08/30 2740
79
    [re] "당신은 지금 함께 아파하고 있습니까?" (프레시안) [12]

후마니타스
2007/08/15 3004
78
    [re] 당신은 길을 만드는 사람인가? 막는 사람인가? (오마이뉴스) [1]

이명옥님팬
2007/08/12 2508
77
    [re] 노동자 인터뷰집 ‘길에서 만난 사람들’ 낸 하종강 소장

유명선
2007/07/21 2977
76
    [re] 시선을 바꾸면, 세상은 멋진 사람 투성이! (나어릴때) [1]

유명선
2007/07/18 2892
75
    [re] 서평 아니고

유명선
2007/07/17 2826
74
    [re] 노동운동 주역들의 생생한 목소리 '길에서 만난 사람들' [3]

안중철
2007/07/15 2981
73
    [re] 마음에 남기는 점묘화 (Brutus)

하종강
2007/07/15 2967
72
  ------------------------------------------------

하종강
2006/06/08 2854
71
  <철들지 않는다는 것> 서평모음 [1]

철수와영희
2007/05/28 2965

    [re] 전사의 피에서 꽃향기를 맡다 (춤추는 펜)

철수와영희
2007/11/27 2393
69
    [re] 나의 중년의 모습을 미리 생각 해 본다. (woojukaki)

철수와영희
2007/11/27 2432
68
    [re] 하종강, 철들지 않은 오십 대... (글샘)

철수와영희
2007/10/03 2727
67
    [re] 철들지 말자,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한 가혹한 주문 (ohmalove )

철수와영희
2007/08/31 2801
[1][2][3] 4 [5][6][7][8]
Copyright 1999-2014 Zeroboard / skin by sayz.net / arranged by J-wn
강정미 <조폐공사>